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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식아동들의 '급식 천사'로 뜬 편의점 알바…그 슬픈 사연
2023-01-19 10:58:59 | 관리자 | 56
 18일 서울 성동구 이마트24 매장에서 시민이 설날 잔칫상 도시락과 떡만둣국 도시락을 살펴보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18일 서울 성동구 이마트24 매장에서 시민이 설날 잔칫상 도시락과 떡만둣국 도시락을 살펴보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아침은 패스, 점심은 편의점 도시락, 저녁은 지역아동센터 급식….
겨울방학을 맞은 중학교 2학년 A군(14)의 삼시 세끼다.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는 생계비를 버느라 아들과 함께 집에서 아침 식사를 한 적이 거의 없다. 경기도 광주시에 사는 A군은 편의점에서는 경기도 결식아동 급식카드(선불카드)를 사용한다. 한 끼 8000원으로 한 달 24만원 정도가 입금된다. 방학을 맞아 학교 급식을 못 먹으니 편의점 도시락은 A군의 주식이 됐다.
 

방학 맞은 결식아동은 왜 편의점을 찾나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정부와 지자체의 급식 지원은 법(아동복지법 제35조 건강한 심신의 보존)에 따른 것이다. 지자체마다 지원 방식이 다양하다. 아동급식카드 외에 도시락이나 아동센터 단체 급식 등을 주기도 한다. 가정 형편에 따라 한두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급식카드가 지원되는 경우, 그 돈의 절반 가까이가 편의점에서 사용된다.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전국 지자체로부터 받은 ‘2022년 1~6월 결식아동 급식카드 사용처 현황’에 따르면 전체 사용 건수 613만9860건 가운데 41.9%(257만2106건)가 편의점에서 쓰였다. 방학 때엔 이 비율이 두 배 가까운 80%대로도 올라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편의점 음식이 갈수록 호평을 받고는 있지만, 결식아동의 급식카드 사용이 집중되는 건 구조적인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편의점이 아닌 곳에서는 먹고 싶은 걸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급식카드 가맹점 번호 가짜로 올려놓기도

편의점이 아닌 식당 등은 급식카드를 쓰기 불편하다는 결식아동과 그 가족의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회원 수 20만 명 이상으로 복지 정보가 공유되는 한 인터넷 카페에는 급식카드 사용 거절 사례 등이 하루 10건 넘게 올라온다. 지난 17일 “쓰기 겁난다”는 내용의 글을 쓴 한부모가정 40대 이모(여·경기도 부천)씨는 “올해 9세가 된 아이에게 김밥을 사주러 분식집에 갔다가 거절당했다. 우리가 편히 갈 곳은 편의점뿐”이라고 적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식당들이 왜 급식카드를 꺼리는지 정확히 파악되지는 않았다. 다만, 종업원이 가맹점이라는 사실 자체를 모르거나, 귀찮게 생각하거나, 굳이 가난한 손님이 오는 걸 바라지 않는 심리 등이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지자체 홈페이지엔 급식카드 가맹점의 전화번호를 공개하고 있지만, 일부 지자체의 홈페이지엔 ‘031-000-0000’ ‘031-111-1111’ 등의 가짜 번호가 적힌 곳이 적지 않았다. 이 지역의 가맹점인 분식집 1곳에 전화를 했더니 “급식카드를 받지 않는다”는 싸늘한 답변이 돌아왔다. 결식아동에게 음식을 무료로 주는 전국 3800여 곳 자영업자 모임인 ‘선한 영향력 가게’의 오인태 ‘진짜 파스타’ 사장은 “카드사 제휴에 따라 가맹점이 돼도 안내를 못 받아 가맹점인지도 모르는 사장이 있어서 사용이 거절되기도 하고, 아르바이트생이 안내를 못 받는 경우도 있다”며 “지자체에서 가맹점을 모은다고 하지만, 그런 홍보문을 받아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거절에 상처”…‘모험’ 대신 편의점

급식카드 사용자 사이에선 맘 편히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사용처를 찾는 것을 ‘모험’이라고 부른다. 편의점은 본사 계약에 따라 급식카드 사용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으니 모험이 필요 없는 장소인 셈이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5년 넘게 급식카드를 썼다는 신모(19·서울 서초구)양은 “사용 가능한 점포를 알기 힘들어 방학 땐 주로 편의점에서 도시락이나 라면을 샀다”고 말했다. 

경기도 성남시 A동의 한 편의점. 아동 급식 카드를 쓸 수 있다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채혜선 기자

경기도 성남시 A동의 한 편의점. 아동 급식 카드를 쓸 수 있다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채혜선 기자

결식아동들도 대체로 편의점을 선호한다. 지난 17일 오후 저소득층 비율이 높은 경기도 성남시 A동 일대 편의점 6곳을 돌아보니 5곳에서 “단골로 오는 학생이 있다”고 답했다. “같은 학생이 매일 와 도시락 등을 사 간다” “라면에 삼김(삼각김밥) 조합을 좋아한다” 등의 말을 들었다. 한 20대 아르바이트생은 “편의점이 워낙 많고 다른 식당에 비해 눈치 볼 필요가 없어 아이들이 자주 오는 것 같다”고 했다. ‘선한 영향력 가게’의 충청·대전 지부장 유병학(36)씨는 “아이들은 카드를 쓸 때 부끄러워하며 눈치를 본다. 편의점 중에서도 급식카드를 유심히 살펴보는 사장님보다는 기계적으로 결제만 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있는 곳을 선호한다고 한다”고 말했다. 결식아동 입장에선 손님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의점 알바생이 편하고 든든하다는 얘기다. 

아동급식카드 사용자들이 "사용 불편하다"며 보내준 사진. 마그네틱 카드인 경우(왼쪽)는 낙인 우려가 있다고 했다. 오른쪽은 재발급 받은 IC 카드. 사진 독자

아동급식카드 사용자들이 "사용 불편하다"며 보내준 사진. 마그네틱 카드인 경우(왼쪽)는 낙인 우려가 있다고 했다. 오른쪽은 재발급 받은 IC 카드. 사진 독자

돈은 있는데 피자는 못 사먹어

한 끼에 책정된 단가도 문제다. 중앙일보가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확인한 ‘2023년 전국 결식아동 급식비 현황’에 따르면 대부분의 지자체는 급식 단가를 1끼 8000원에 맞췄다. 최근 물가 상승으로 일반 음식점에서 한 끼를 해결하기엔 애매한 액수다. 서울에 사는 중학교 3학년 C양은 “카드를 쓸 수 있는 식당을 찾아도 비싸서 못 먹거나 따로 추가금을 내야 하는 게 불편할 때가 많아 편의점만 갔다”고 말했다. 김영태 한국결식아동청소년지원협회 대표는 “밥을 굶는 게 결식이 아니라 성장 시기에 영양소를 공급받지 못하는 게 결식”이라며 “물가 상승을 고려해 한 끼 만원 정도는 정부 차원에서 지원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급식카드 하루 사용 한도(2만~2만7000원)가 있어서 한도를 초과하는 피자 등을 사 먹기 어려운 점도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이들이 단 한 끼라도 금액에 구애받지 않고 맘 편히 먹을 수 있도록 제도에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류호경 부산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접근성이나 트렌드를 봤을 때 아이들이 편의점을 가는 건 막을 수 없다. 어린 학생을 위한 도시락 상품을 고민하는 등 각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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